국내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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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전교인 국내성지순례 갑니다
운영자 2016-09-30 추천 0 댓글 0 조회 2347

  

 

 




 
2016년도 전교인 성지순례를 갑니다

순교는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여수 애양원과 순천일대를
다녀오려고 합니다

여수밤바다...노래만 들으셨다면
이번에 그 아름다움을 확인하세요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불리우는 손양원 목사님께서
목회하셨고 또 순교하신 애양원은 한센병에
걸려서 오갈 곳 없는 사람들, 가족들에게 외면받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을
나눈 하나님 나라의 모형인 장소이자,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로 삼고
용서를 넘어 사랑을 실천한 바로 그곳이랍니다
애양원에서 묵게 될 것입니다
손양원목사님의 손길과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될것입니다 기대하세요

온 대지가 가을의 풍성함으로 아름답게
변화하는 순천만과 국가정원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국내성지순례를 통해 믿음의 진보와 영육의 회복을 경험하는 시간이 될 것 입니다

위하여 기도합시다. 위하여 기도해주세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손양원목사 그는 누구인가?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영화로 눈과 귀에 익숙한 인물이다

그는 일본유학을 마치고 평양신학교를 졸업(1936년 36세)한후 한센병환자들이 있는 애양원으로 부임(1937년 8월 37세)한다.

 

그는 먼저 한센병환자들과 일반인 사이에 세워져있던 철조망을 제거하는데, 그들과의 담을 허물어 버린것이다.

그리고 중환자실에 있던 환자들에게도 직접 찾아가 그들의 두손을 따뜻하게 잡는다.

이 곳은 같은 환자라도 가기를 꺼려하는 곳이다.

 

그러던 중 일제에 항거한 '신사참배거부운동'과 순천노회의 '원탁회사건'으로 교회장로들과 함께 

일본경찰에 연행(1939년)되어 6년간 옥살이를 하다 광복을 맞아 애양원으로 돌아오게 된다.

경남노회에서 목사안수(1946년)을 받고,

그후 여순반란사건(1948년)때 순천사범학교와, 순천중학교에 다니던 두 아들을 잃게 된다.

자신은 한국전쟁 중 여수까지 내려온 공산군에 의해  여수 근교 미평 과수원에서 순교(1950년 9월 48세)하였다.

 

여수애양원은 언제 생겼을까?

미국 남장로교의 선교 사업으로 1909년 광주 양림에서 시작되었으며, 1925년 여수로 이전 확장이 된다. 벨목사와 오웬선교사사 1904년 2월 목포선교부에서 파송되어 12월 25일 광주에서 성탄예배로부터 선교를 시작한다. 1909년 4월 3일 오웬선교사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친구이었던 포사이드는 즉시 목포를 떠나 광주로 출발하는데 배를 타고 영산강을 거슬러 나주까지 도착하고 다시 말을 타고 광주로 가던 중, 길가에 쓰러진 여자 한센병 환자를 발견한다. 그는 곧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녀를 말에 태워 광주로 향한다. 그가 도착을 하였지만 오웬은 이미 사망한 후였다.

포사이드는 광주제중원에서 '한센병자' 치료를 하려다가 다른 환자들 거센 반발에 부딪히게 되었는데, 마침 월슨등의 선교사들이 사택을 건축하기 위해 벽돌을 굽던 가마터에서 그녀를 치료하며 복음을 전했다. 이때부터 한센인에 대한 치료와 보살핌이 시작된다. 1909년 윌슨은 인근에 작은 집을 짓고 한센병 환자 10여명을 치료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한국 최초로 광주한센병원의 시작이 된다.

이후 1925년 까지 약 600여명의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들자 지역주민들의 집단 항의를 받게되고,

1928년 여수 율촌면으로 이전을 하게 되는데 기부자의 이름을 따서 '비더울프 나병원 (1928~1935)'으로 불리던 한센병원은 1935년 공모를 통해 "애양원(양 키우는 사랑의 동산)"이라는 이름을 체택하고 현재에 이른다.


 

 

 

손양원목사의 남긴글

9가지 감사(손양원목사님이 두아들을 잃고 장래식에서 하나님께 드렸던 감사기도)

1.나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을 나게 하심 감사.

2.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서 이런 보배를 나에게 주심 감사.

3.3남3녀중에서 가장 귀한 장남과 차남을 바치게 하심 감사.

4.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이 순교함을 감사.

5.예수 믿고 외석 종신해도 복인데 전도하다 총살 순교함을 감사.

6.미구가려 준비하던 아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감을 감사.

7.내 아들을 죽인 원수를 회개시켜 아들 삼게 한 사랑을 감사.

8.내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서 무수한 천국의 열매가 생길것을 믿으면서 감사.

9.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이길수 있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손양원목사 순교유적지

1997년 4월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1번지에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실천한 손양원목사의 순교신앙을 계승하고 그가 남긴 순교 지료를 보관하기 위해 세워졌다.  계단의 갯수와, 벽이 12벽으로 이루어진 것, 계단 끝에 새겨진 그림들 등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의미가 있는 기념관이다. 건축에 사용된 재정은 모두 한센병으로 이곳에 와있는 사람들의 헌금으로 이루어져 더욱 의미가 있다.

 

 

삼부자묘

삼부자가 순교한 일은 드문 일로 현재 이 묘역에는 1948년 10월 21일 순교한 손양원목사의 장남 동인과 차남 동신의 묘 2기가 앞에 있고, 뒤에는 1950년 9월 28일 순교한 손양원 목사와 1977년 11월 26일 사망한 정양순사모와의 합장묘 1기가 있다.

손양원 목사는 두 아들을 앞서 보내며 "내가 죽거든 이곳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긴것으로 전해진다.

 

 

성산교회

1909년 4월 25일 창립

베드로전서 2:4~5의 말씀처럼 산돌(손양원목사의 호가 산돌입니다)과 같이 살았던 

손양원목사의 애양원식구들을 위해 쏟으신 사랑과 주를 위해 흘리신 피가 살아서 역사하고 있는 곳이다. 애양원교회(성산교회)는 이러한 뜻을 받들어 주님의 재림의 날까지

1. 순교자의 신양을 계승하고

2.산돌과 같은 신앙인재를 양성하며

3.소외된 지역을 주님의 사랑으로 돌보는 일에 힘쓰고 있는 교회다.

현재는 전원교회로서의 준비를 하고 있다

 

자신은 한국전쟁 중 여수까지 내려온 공산군에 의해 여수 근교 미평 과수원에서 순교(1950년 9월 48세)하였다.

<여수 산돌교회에 있음>

 

애양원펜션 치유의숲

토플하우스와 펜션

토플하우스는 예전 한성신학교였던 건물을 폔션으로 리모델링한곳이다

그리고 주변의 15개동의 폔션은 예전 병원숙소건물중 보존상태가 좋은 숙소를 리모델링하여 펜션으로 만들어 치유의 숲으로 활용하고 있다

http://www.wlc.or.kr

주소: 전남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18

전화: 061)640-8853~4/ 640-8831

 

 

여수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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